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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책

밝은밤_최은영_문학동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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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책이란 걸 읽지 않던 시기에 최은영의 첫 장편소설 밝은밤이 나왔다고 해서 일단 구매를 했다. 그리고 따뜻한 느낌의 표지와 제목을 지나 작가의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울컥했다.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툭 치면 쏟아져 내릴 물주머니 같은 것」이란 표현이 설명할 수 없었던 나의 상태를 멋진 문장으로 대변해 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책과엽서
새비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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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밤은 총 5부로 나뉘어 있고 작가의 말까지 총 343페이지다. 3대의 걸친 인물들이 겹치고 어우러지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지연, 지연의 엄마(미선), 미선의 엄마(지연의 할머니, 영옥)를 중심으로 그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까지 다루고 있다. 그중에는 삼천(지연의 증조모) , 새비(증조모의 동료) , 희자(새비의 딸) , 명숙 할머니(새비의 고모)가 주요 인물들이고 새비아저씨(희자의 아빠) , 증조부(영옥의 아빠)가 각각의 다른 유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 등장한다.

세대와 인물이 자유롭게 넘나들며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그 부분으로 인한 혼동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른 이야기와 감동이 전해지는 신기한 소설이다. 등장인물이 많거나 시간이나 공간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소설은 대부분 파악하는데 어떤 노력이 필요했던 것 같은데 밝은밤은 그렇지가 않다.

이야기는 지연이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직장 때문에 희령으로 이사하면서 시작된다. 희령에서 오랫동안 못 만났던 할머니, 영옥을 통해서 삼천 , 새비 , 희자 등을 만나면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이야기들이 나온다. 각자의 고통과 삶을 서로 이해하기도 하며 가끔은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하는데 전체적인 느낌은 따뜻하다. 모든 에피소드에서 서로를 향한 애틋함과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고 삶의 당연한 고난과 함께 특별한 위로도 선사한다.

 

 

엽서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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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 안에는 여러 종류의 고초를 겪는 사람들과 그에 따른 표현 , 마주하는 상대의 반응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꽤 오랫동안 스스로 가중시킨 괴로움 속에서 허우적대며 불쑥불쑥 나오는 밑바닥 감정이 주체가 안되었던 나는 책 속에 나오는 모든 고통에 너무 쉽게 녹아들어 가서 이입이 되었다. 그중에서 봄이랑 헤어지는 장면에서 눈물이 많이 났는데 약한 존재가 자기보다 강한 상대의 입장을 배려한 모습이 너무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고 내가 스스로 만든 고통 속에서 허우적 대는 동안 나의 보호를 못 받을 누군가가 생각나서였다.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고 여러 에피소드들이 나오지만 모두가 연결되어 있고 자연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표현들 때문에 뒤로 갈수록 묵직한 공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요즘 어딜 봐도 긍정, 행복만 이야기되는 분위기라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었는데 밝은밤을 읽는 동안에는 본연의 나로 있으면서도 동지를 만난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 사람들은 의외로 보편적이지 않은 분류의 고통에는 냉소적이며 그 부분을 오히려 당사자의 약점쯤으로 대하는 경향이 있다고 느낀 적이 있는데 소설 안에서도 그러한 상황들이 나타나서 씁쓸했지만 공감이 갔다. 특히 실질적이면서도 빛나는 문장의 표현들은 이 소설을 더욱 의미 있게 하는 요소라 생각이 든다.